1. 서 론
기록물이란 공공기관에서 직무상 작성하거나 접수한 문서, 전자문서, 도면, 사진, 테이프 등 다양한 매체에 기록된 모든 형태의 정보를 의미한다. 그중에서 종이 기록물은 법적, 행정적, 역사적, 그리고 일상적 활동에서 발생한 기록을 포함하며, 종이 매체에 기록된 다양한 형태의 문서를 포괄한다(Kim, 2006). 특히 도면은 건축, 기계, 전자, 토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설계와 계획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자료로, 특정 구조물, 제품, 시스템 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어 정확한 크기, 형태, 재료, 조립 방법 등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에는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건축 도면이 남아 있으며, 이들은 근대 건축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도면들은 과거 건축물의 보존과 근대 건축사에서 양식적 변천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학술적⋅보존적 자료로, 현존 건 의 유지 및 관리, 그리고 훼손되거나 소실된 건축물의 복원에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Yang, 2008).
우리나라 도면은 여러 국가기관, 민간기관, 개인 등에 의해 소장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건축 관련 도면을 전문적으로 소장 및 관리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가기록원을 들 수 있다. 이들 기관이 보유한 도면 수량은 각각 규장각 756매, 장서각 174매, 국가기록원 약 26,000매로(Na and Lee, 2012), 총 약 26,930매에 이르며 이는 적지 않은 양이다.
도면에 사용된 재질은 트레이싱지(Tracing paper), 크로스지(Cloth paper), 청사진(Blue/White print), 양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트레이싱지는 펄프를 매우 고운 형태로 가공한 단섬유 종이로,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크로스지는 면이나 마로 직조한 천에 전분으로 사이징 처리하여 제작한 형태로, 근대 시기 도면 제작에 주로 사용된 재질 중 하나였다(Go, 2014). 이 외에도 다양한 재료가 도면 재질로 사용되어, 일반 종이 기록물과 달리 도면은 특수한 형태와 재질을 가지고 있어 전문적인 보존과 관리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세 기관을 중심으로 근대 건축 도면에 대한 아카이빙 사업, 해제 작업, 데이터 디지털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으나, 도면 재질에 대한 분석과 보존처리는 일부 연구에 그치고 있다. 현재는 주로 국가기록원의 연구 성과가 잘 알려졌지만, 다른 기관에서는 관련 연구나 보존 관리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트레이싱지의 보존처리와 성분 분석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도면 열화 요인에 대한 보존 관리 매뉴얼을 체계화하고 보다 발전된 보존처리 방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열화와 관련해 다양한 트레이싱지의 재질 특성과 가속 노화 과정을 통해 열화 양상과 보존처리에서의 용매 적용성을 평가한 연구(Van der Reyden et al., 1993)가 있으나, 트레이싱지를 제외한 도면 재질 전반에 대한 열화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도면의 재질별 열화 양상을 파악하고 이를 실제 도면과 비교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트레이싱지와 크로스지, 그리고 와트만 여과지를 사용하여 시편을 제작하고, 촉진 내후성 열화 실험을 통해 각 재질의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도출한 열화 특성을 바탕으로 실제 도면의 열화 메커니즘을 추정하고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고자 한다.
2. 재료 및 방법
2.1. 연구 재료
2.1.1. 공시 재료
트레이싱지는 C사에서 구매, 크로스지는 A사에서 크로스지1)로 추정되는 종이를 구매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셀룰로오스계 섬유의 열화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지시적 시료로 활용하고자 와트만 여과지를 대조군으로 사용하였다(Table 1).
2.1.2. 시료 제작
각 분석 방법의 기준에 맞는 크기와 수량으로 시편을 재단하였으며, 재단된 시편은 분석에 앞서 KS M ISO187 기준에 따라 RH 50%, 23℃의 일정한 환경에서 최소 24시간 동안 전처리하였다.
2.2. 연구 방법
2.2.1. 섬유 분석
KS M ISO9184-4를 기준으로 Graff “C” stain 정색 반응법을 이용해 섬유 분석을 진행하였다. 섬유를 증류수에 해리한 뒤 염색하여 프레파라트를 제작하고, 디지털 현미경(DVM6M System, Leica, JPN)으로 300배와 500배로 관찰해 섬유의 형태와 특징을 파악하였다.
2.2.2. 인공 열화
열화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KS M ISO5630-7에 의거하여 촉진 내후성 시험기(UV-TEST, Atlas, USA)를 사용해 자외선 조사(UV-A 340, 0.89 W/m2, 60℃) 총 672시간으로 설정하였다. 열화 168시간(7일)마다 시편의 변화를 관찰하였다(Table 2).
2.2.3. 물리적 특성 분석
1) 표면 관찰
표면 관찰은 육안상으로 관찰하여 상태 및 색상 변화를 관찰하였고, 도면의 재료적 특성 및 열화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휴대용 디지털현미경(DG-3X, Scalar, JPN) 200배로 관찰하였다.
2) 내절강도 측정
내절강도 측정용 시편은 KS M ISO 5626 기준에 따라 폭 1.5 cm, 길이 11 cm로 재단하였으며, 측정에는 MIT 내절강도 시험기(HO-M-100, ㈜테스트원, KOR)를 사용하였다. 시험 조건은 측정 하중 1.5 kgf, 시험 각도 135°, 시험 속도 175 cpm(cycle/min)으로 설정하였고, 강도는 내절 횟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되 10 – 10,000회로 제한하였다. 크로스지는 내부 직물의 위사(Weft) 방향과 경사(Warp) 방향으로, 트레이싱지는 기계 방향(MD, Machine direction)과 폭 방향(CD, Cross direction)으로 재단하였으며, 재료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각 5배수씩 측정하였다. 와트만 여과지는 방향 구분 없이 10배수 측정해 평균값을 산출하였다.
2.2.4. 광학적 특성
분석 색상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분광측색계(CM-700D, Minolta, JPN)을 사용하였으며, 측정 조건은 KS M ISO 11475에 따라 광원 D65, 시야각 10°으로 설정하였다. 3배수 시편에서 3개 포인트를 5회씩 반복 측정하여 CIE L*, a*, b*의 평균값을 산출하고, 색차식으로 색차(△E)를 구하였다(Equation 1). 또한 국제조명위원회(CIE)에서 규격화한 기준을 활용하여 색차를 평가하였다(Table 3).
Equation 1. Color difference formula.
2.2.5 화학적 특성 분석
1) ATR-FTIR 스펙트럼 분석
결합 구조의 변화를 확인하고자 감쇠 전반사-푸리에 변환 적외선분광분석(ATR-FTIR)을 사용하였다.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분석기(Alpha, Bruker, DEU)를 이용해 3배수 시편의 3개 포인트를 측정하였다. 측정 조건은 파장대 4,000∼400 cm-1, 분해능 4 cm-1, 스캔 수 32회, 크리스탈 종류는 다이아몬드, 감쇠 전반사(ATR) 모드로 설정하였다.
2) 수소 이온 농도 측정
열화에 따른 재질의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소 이온 농도(pH)를 측정하였다. pH 측정기(Horiba LAQUA F-72, LAQUA, JPN)를 사용하여 3배수 시편에서 3개의 포인트를 측정하고, 평균값을 산출하였다.
3. 연구 결과
3.1. 섬유 분석
트레이싱지는 회청색으로 염색된 방형의 가도관이 관찰되어 침엽수 펄프로 추정되었으며, 고도로 고해된 섬유가 확인되었다. 크로스지는 내부에 직조 형태의 섬유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꼬임과 함께 사이징제로 추정되는 보라색으로 염색된 결정들이 관찰되었다. 와트만지는 회적색으로 염색된 특징을 보였으며, 리본 형태의 꼬임이 관찰되어 면섬유임이 확인되었다(Table 4).
3.2. 물리적 특성 분석
3.2.1. 표면 관찰
표면 변화를 관찰한 결과, 육안으로는 대부분의 시편에서 별다른 특이 사항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열화 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미세한 변색이 진행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특히 트레이싱지에서는 인공 열화 이후 모든 시료에서 열화 전보다 심한 말림 현상이 나타났다. 디지털 현미경 관찰 결과, 표면에서 균열이나 갈라짐과 같은 뚜렷한 변화는 발견되지 않았다(Table 5).
3.2.2. 내절강도 측정
내절강도 측정 결과, C-0의 위사 및 경사 방향과 C-1 경사 방향에서는 내절 횟수가 10,000회를 초과하였고, W-2, W-3, W-4는 10회 이하로 측정되어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트레이싱지를 제외한 모든 시편에서 열화 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내절강도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내절강도 감소율은 크로스지, 트레이싱지, 와트만 여과지 순으로 높았으며, 특히 기계, 경사 방향이 폭, 위사 방향보다 내절강도가 빠르게 감소하였다. 와트만 여과지는 본래 내절강도가 낮아 열화에 따른 변화폭이 크지 않았으나, 크로스지는 약 90% 이상 내절강도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트레이싱지는 다른 시료들과 달리 열화 168, 336시간에서는 내절강도가 감소했으나, 열화 504, 672시간에서 다시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Figure 1).
3.3. 광학적 특성 분석
색도 측정 결과, 열화 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각 재질의 색상 변화 양상이 달랐다. 트레이싱지는 L*이 감소하였고, 크로스지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와트만 여과지는 열화 초기에는 증가하였다 후반부에 감소하는 패턴을 나타냈다(Figure 2). a*의 경우, 열화 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트레이싱지와 크로스지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고, 와트만 여과지는 감소하였다가 증가하는 양상이 확인되었다. b*은 모든 시료에서 열화가 진행될수록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Figure 3). 색차(△E) 분석에서는 트레이싱지와 크로스지가 열화 기간이 늘어날수록 색차가 점진적으로 증가한 반면, 와트만 여과지는 증가 후 다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색차는 트레이싱지가 가장 높았으며, 크로스지와 와트만 여과지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트레이싱지는 열화 168시간 이후부터 색차가 급격히 증가하였다(Figure 4). Table 3에 제시된 기준에 따르면 트레이싱지는 ‘현저한 변화’를, 크로스지는 ‘약한 변화’에서 ‘인지 가능한 변화’로, 와트만 여과지는 ‘극도로 약한 변화’에서 ‘약한 변화’를 보인 것으로 평가되었다(Table 6).
3.4. 화학적 특성 분석
3.4.1. ATR-FTIR 스펙트럼 분석
ATR-FTIR 스펙트럼 분석 결과, 트레이싱지와 와트만 여과지에서는 셀룰로오스 섬유의 특징적인 피크인 3,400 cm-1 부근의 O-H 신축 진동, 3,000 – 2,800 cm-1 부근의 C-H 신축 진동, 그리고 1,100 – 1,000 cm-1의 C-O-C 결합이 확인되었다(Figure 5, 7). 반면 크로스지에서는 폴리에스터의 특징적인 피크인 3,000 – 2,800 cm-1 부근의 C-H 신축 진동, 1,700 cm-1의 C=O 신축 진동, 1,200 – 1,000 cm-1 부근 의 C-O-C 신축 진동 외에도 다당류에서 나타나는 3600 – 3000 cm-1 부근의 O-H 신축 진동, 1,200 – 1,000 cm-1 부근의 C-O 및 C-O-C 신축 진동, 850 cm-1 부근의 α-1,4 글루코사이드 결합이 관찰되었다(Figure 6).
모든 시료에서 열화 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흡광도의 변화가 관찰되었으나, 변화 폭이 미세하여 명확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3.4.2. 수소 이온 농도 측정
수소 이온 농도 측정 결과, 열화 기간이 길어질수록 모든 시료의 pH가 점차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pH는 모든 열화 기간 동안 와트만 여과지가 가장 낮았고, 그다음으로 크로스지와 트레이싱지 순으로 낮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트레이싱지는 pH가 5에서 4로 감소한 반면, 크로스지와 와트만 여과지는 열화 전 pH 5 수준에서 672시간 후 pH 3까지 감소하는 것이 확인되었다(Figure 8).
4. 고찰 및 결론
본 연구는 인공 열화에 따른 도면 재질의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도면 보존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고, 와트만 여과지를 대조군으로 삼아 트레이싱지와 크로스지를 인공 열화시켜 열화에 따른 각 재질의 특성과 변화를 파악하였다.
와트만 여과지는 고순도의 셀룰로오스 섬유로 구성되어 있어 첨가물로 인한 화학적 변화가 거의 없어 순수 셀룰로오스 종이의 열화 특성을 평가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와트만 여과지는 색차 변화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색상 변화는 미미했으며, 산성화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첨가물이 없는 상태에서도 셀룰로오스가 열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산성화가 진행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트레이싱지는 인공 열화가 진행됨에 따라 말림 현상과 함께 산성화 및 강도 감소가 나타났으며, 열화 초기 단계부터 변색이 뚜렷해지면서 색차가 급격히 증가해 시각적으로 뚜렷한 변화가 확인되었다. 이는 와트만 여과지와는 달리, 종이의 투명성을 향상시키는 고밀도 처리 과정에서 첨가된 오일, 수지 등의 가소성 물질이 열화 과정 중에 분해되고 휘발되면서 열화를 촉진한 결과로 추정된다. 가소성 물질은 빛, 열, 습도와 같은 환경적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종이의 기계적 성질과 변색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van Der Reyden et al., 1992, Hofmann, et al., 1993). 이러한 화학적 변화는 종이의 pH 감소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pH 변화가 크지 않아 물리적 특성과 화학적 특성 간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내절강도는 열화 초기 단계에서 감소하다가 후반부에는 다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트레이싱지의 사이징제가 열화 중에 재배열되어 일시적으로 강도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러한 경향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크로스지의 경우, 열화 과정에서 물리⋅화학적 특성이 크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ATR-FTIR 분석 결과, 폴리에스터 섬유와 다당류 성분이 검출되어, 폴리에스터 섬유에 전분과 같은 다당류로 사이징 처리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열화가 진행됨에 따라 내절강도는 약 90% 이상 급격히 감소하고, pH는 4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색차는 트레이싱지보다는 미미하지만, 열화가 진행될수록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폴리에스터 자체의 열화보다는 전분과 같은 첨가물의 산화 및 가수분해 반응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와트만 여과지와 비교했을 때 첨가물이나 사이징제의 열화가 종이의 열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Flieder, et al., 1979). 또한 섬유가 천연 직물일 경우, 전분의 열화와 함께 직물 자체의 열화가 동시에 발생하여 복합적인 열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Stephens, et al., 2013).
본 연구를 통해 각 재질의 물리적, 화학적 열화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실제 도면의 재질이 실험에 사용된 시편과 다를 수 있으며, 다양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열화가 발생하므로 실험 결과와 실제 열화 과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도면의 재료적 특성을 더욱 면밀히 분석하고, 다양한 인공 열화 방법을 적용한다면 실제 도면에서 일어나는 열화 메커니즘을 보다 정확히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도면의 효과적인 보존 관리 및 처리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나아가 장기적 보존 방안 수립에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